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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서랍

이끼향 2011. 11. 18. 18:30

 

 

         마음의 서랍

 

 

                                       강 연 호

 

 

 

이제는 완전히 지워버렸다고

자신했던 아픈 기억들

 바늘처럼 찔러올 때
무수히 찔리면서

바늘귀에 매인 실오라기

 따라가면 보인다

 

입술 다문 마음의 서랍
허나 지금까지 엎지르고

퍼담은 세월 적지 않아서
손잡이는 귀가 빠지고

깊게 패인 흠집마다 어둠
고여 있을 뿐

쉽게 열리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뻑뻑한 더께 쌓여 있는 걸까
마음의 서랍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힘에 겨워
나는 어쩔 줄 모른다

거기 뒤죽박죽의 또 한 세상

 

열면

잊혀진 시절 고스란히 살고 있는지
가늠하는 동안

어디에선가 계속 전화벨이 울려
아무도 수신하지 않는

그리움을 전송하는 소리 절박하다

나야,

외출 했나 보구나,

그냥 걸어봤어,

사는 게 도무지 강을 건너는 기분이야,

하염없이 되돌아오는

신호음에 대고 혼자 중얼거리듯
우두커니 서서

나는 마냥 낯설기만 한
마음의 서랍 끝내 열어보지 못한다

아무래도

외부인 출입금지의

팻말 걸린 문 앞에
서성대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니 그보다는
대낮에도

 붉은 등 켜고 앉아

화투패 돌리며 쉬어가라고

가끔 고개 돌려 유혹하는

여자들의 거리에
와 있는 것만 같아

안절부절이다

 

순정 만화 처럼
고만고만한 일에

울고 웃던 날들은 이미

강 건너
어디 먼 대양 에라도 떠다니는지

오늘 풍랑 심하게 일어

마음의 서랍 기우뚱거리면
멀미 어지러워

나도 쓸쓸해진다

 

언젠가
뭘 그렇게 감춘 것 많냐고

속 시원히 털어놓으라고
나조차 열어보지 못한

마음의 서랍

우격다짐으로 열어본 사람들

기겁하여 도망치며 혀차던

마음의 서랍은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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