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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피

이끼향 2011. 12. 2. 09:18

 

 

 

탈피(脫皮)

 

                         강진아

영혼은
끊임없이 잉태를 하고
진통을 한다
때(時)의 흐름에 따라
깨달음(覺)을 쉼 없이
태어나게(生) 하여
육신을 바쁘게 한다

부동(不動)은 죽음이다
변화무쌍(變化無雙)하게
태어나고 소멸하는 깨달음은
잉태된 순간 벌써
느낌(感)을 낳는다

양수는
하단전으로부터 북받쳐 올라
바람도 되고 물도 되어
울대를 울려 소리를 낳고
눈물샘으로 솟구쳐 흐르는 바

영혼이 진통을 하면
해산의 순간에 우리는
웃고(喜) 성내며(怒)
슬퍼하고(哀) 즐거워하며(樂)
사랑하고(愛) 욕하며(惡)
탐하는(慾)
칠정(七情)을 드러낸다

육신은
영혼의 코디네이터
자기표현을 위해 선택한 악세사리
목적지를 가기 위한 운송수단
또 다른 영혼과의 교통의 매체다

육신이 병들면
영혼이 아프고
영혼이 병들면
육신이 황폐해진다

육신이
그 기능을 잃거나
목적지에 도달했거나
영혼의 뜻에 부합되지 못할 때
영혼은
육신을 떠난다

육신은 호흡을 멈추고
움직이지 않는다
세상은
그것을 죽음(死)이라 칭하고
슬퍼(哀悼)하지만
고치를 벗어버린 영혼은
비로소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것이다

숨이 끊김은 탯줄을 자르는 의식
세상을 살기 위해 땅에서 취한
육신이라는 태반은
영혼으로부터 분리되어
온 곳
땅으로 돌아간다
또 다른 영혼의 모태가 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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